[대선 기획-내가 틀렸다]대선 후보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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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reo 작성일25-04-28 04:44 조회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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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기획-내가 틀렸다]대선 후보의 성찰③ 한상균, 가족 외식·여행은 언감생심…이제 같은 곳 바라보려 애쓰겠다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으로 이어지는 초유의 사태 속에 시민은 ‘성찰할 줄 아는 지도자’의 탄생을 염원하고 있습니다. 한겨레21은 제21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 선언을 한 후보자들이 얼마나 깊은 성찰을 하고 있는지 세상에 내보일 ‘내가 틀렸다’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2022년 미국 뉴욕타임스가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시대에 언론이 먼저 모범을 보이려 한 기획(I was wrong)과 같은 제목입니다. 대선 후보자들이 각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지금 생각해보니 자신이 틀렸던 순간에 대해 고백합니다. 세 번째 기고는 한상균 사회대전환 연대회의 대선 경선 후보의 글입니다. —한겨레21 대선보도팀전남 나주 봉황면 깡촌에서 나고 자랐다. 3남 3녀의 둘째다. 집안 살림은 당시 수많은 빈농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아버님은 엄하셨고, 어머님은 농사일, 집안일, 자식 교육 등 모든 걸 몸이 부서져라 책임지셨다. 돌아보면 가부장적 위계질서와 남녀 역할 구분 쉽게 말해 남자는 나가서 큰일을 하고 여자는 집안 살림 잘 챙기면 최고라는 그런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랐다.공부에 큰 관심도 없었지만 기술을 배워 취업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광주에 있는 전남기계공업고등학교(현 광주공고)로 유학을 갔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광주시민의 한 사람으로 전두환 계엄군의 학살과 만행을 목격했고 무엇이 옳은지 알았기에 친구들과 소년시민군으로 전남도청에 있기도 했다. 1985년 당시 지프차를 생산하던 쌍용자동차 전신인 회사에 입사해 노동자 한상균이 있게 된 출발인 노동자의 삶을 시작했다.16일 서울 중구 한화빌딩 앞 고공농성장 앞에서 사회대전환 대선 연대회의 소속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한 권영국 정의당 대표와 한상균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 대표가 악수를 하고 있다. 연대회의 제공‘지금까지 살면서 부끄럽다고 할만한 것이 있을까?’ 싶었다. 없을 수 있을까? 찾아보면 수도 없이 많을 테지만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가족 특히 아내에 대한 이야기다. 1990년 부부의 연이 되어 함께한 세월이 35년이다. 아내에게 한상균은 남편 그리고 가장이 아니라 세상과 결혼하고 세상을 책임지려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1987년, 민주화와 노동자 대투쟁의 바람은 어김없이 쌍용자동차 공장에도 들어왔다. 평범[대선 기획-내가 틀렸다]대선 후보의 성찰③ 한상균, 가족 외식·여행은 언감생심…이제 같은 곳 바라보려 애쓰겠다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으로 이어지는 초유의 사태 속에 시민은 ‘성찰할 줄 아는 지도자’의 탄생을 염원하고 있습니다. 한겨레21은 제21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 선언을 한 후보자들이 얼마나 깊은 성찰을 하고 있는지 세상에 내보일 ‘내가 틀렸다’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2022년 미국 뉴욕타임스가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시대에 언론이 먼저 모범을 보이려 한 기획(I was wrong)과 같은 제목입니다. 대선 후보자들이 각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지금 생각해보니 자신이 틀렸던 순간에 대해 고백합니다. 세 번째 기고는 한상균 사회대전환 연대회의 대선 경선 후보의 글입니다. —한겨레21 대선보도팀전남 나주 봉황면 깡촌에서 나고 자랐다. 3남 3녀의 둘째다. 집안 살림은 당시 수많은 빈농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아버님은 엄하셨고, 어머님은 농사일, 집안일, 자식 교육 등 모든 걸 몸이 부서져라 책임지셨다. 돌아보면 가부장적 위계질서와 남녀 역할 구분 쉽게 말해 남자는 나가서 큰일을 하고 여자는 집안 살림 잘 챙기면 최고라는 그런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랐다.공부에 큰 관심도 없었지만 기술을 배워 취업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광주에 있는 전남기계공업고등학교(현 광주공고)로 유학을 갔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광주시민의 한 사람으로 전두환 계엄군의 학살과 만행을 목격했고 무엇이 옳은지 알았기에 친구들과 소년시민군으로 전남도청에 있기도 했다. 1985년 당시 지프차를 생산하던 쌍용자동차 전신인 회사에 입사해 노동자 한상균이 있게 된 출발인 노동자의 삶을 시작했다.16일 서울 중구 한화빌딩 앞 고공농성장 앞에서 사회대전환 대선 연대회의 소속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한 권영국 정의당 대표와 한상균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 대표가 악수를 하고 있다. 연대회의 제공‘지금까지 살면서 부끄럽다고 할만한 것이 있을까?’ 싶었다. 없을 수 있을까? 찾아보면 수도 없이 많을 테지만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가족 특히 아내에 대한 이야기다. 1990년 부부의 연이 되어 함께한 세월이 35년이다. 아내에게 한상균은 남편 그리고 가장이 아니라 세상과 결혼하고 세상을 책임지려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1987년, 민주화와 노동자 대투쟁의 바람은 어김없이 쌍용자동차 공장에도 들어왔다. 평범할 수도 있었던 공장노동자 생활은 이때부터 바뀌었다. 출근해 일하고, 퇴근해 가족과 함께 하는 고단하지만 평범한 노동자의 삶이 아니게 된 것이다. 어용노조를 없애고 민주노조를 만드는